일 시 : 2008년 5월 25일
산행지 : 강원 영월 계족산
산행코스 : 정양리마을 - 새재 - 칼바위능선 - 정상 - 왕검성지 - 정조대왕태실비 - 정양리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 10분
누구와 : 평택전국산악회 47명
날씨 : 맑음 더웠음
산행기 :
계족산 소개 -
높이 890m
계족산을 그렇게 많이 찾지 않는 산인가보다.
정상에도 2008년 4월에 정상표지석을 해 둔 것도 그렇고..
능선에서의 전망도 생각만치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영월 계족산을 산행하면서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왕검성과 성지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좀더 보전해야 할 것 같은 성곽과 성지는 무성한 나무와 풀로 관리가 안되고 있다.
아니 관리를 할려는 생가도 없다.
계족산은
영월읍 동쪽에 병풍을 친 듯 화성(火星)의 모습으로 수석처럼 우뚝 솟은 산으로 닭의 발처럼 생겨서 계족산이라 했다고 한다.
백두대간 함백산에서 갈라져 서쪽으로 뻗어내린 지능선이 두위봉, 망경대산, 응봉산을 거쳐 남한강에 막혀 더 뻗지 못하고 지
맥을 다해 험준한 산세를 이룬 곳이 계족산이다. 산자락에는 고구려의 산성 정양산성(왕검성)과 정조대왕 태실비 등의 유적이
있으며 영월화력발전처가 자리하고 있다.
영월읍에서 88번 지방도를 따라 승용차로 20분 거리인 정양리에 도착하면 영월화력발전처가 있으며 발전처 담장이 끝나는 곳
에 계족산 산행 안내도가 서 있고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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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날씨는 무지 덥다 .
집에 있자니 짜증나고
운동도 게을러서 하지 않고
큰아이 한자시험 끝나고 집으로 와서 뒹굴뒹굴하다 서운산으로 향한다.
혼자산행을 하면 항상 산행속도가 빠르다.
약 12km를 2시간 10분만에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삼겹살을 사서 간다.
하지만 이런 큰 실수가 있냐..
큰아이 어제부터 배가 아프고 토하고 했었는데 아침에 괜찮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했더니만
결국 장염이었던 같다.
삼겹살 조금 먹더니 다시 저녁에 배가 아프다고 한다..
그때야 에쿠...
밤새 아프다고 하는 아이을 두고서 홀로 산행길은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산행중에 전화해보니 병원에 가고 좋아졌다고 한다..
몹쓸 아빠......
계족산 정상에서...
오늘은 전국산악회에 처음으로 같이 산행을 해 본다. 계족산 산행안내도를 받고서 쓸쩍보고서 주머니에 넣어 둔다. 선두에서는 힘차게 올라가는데... 이상타 왜 임도로 계속가는걸까... 등산지도에선 임도로 가는게 없었는데 ..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를 보고서도 그냥 앞에가는 선두만 천천히 뒤 따라가는데... 에쿠....
정양리 마을회관을 지나...
여기가 마을이 끝나는 지점으로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에서는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우린 그냥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한참을 가서야 길을 잘못들었다고 선두에서 부터 내려오기 시작한다. 잠시 뛰어서 이곳까지 와보고 다시 이곳에서 산아래의 큰 나무가 있는 곳에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는곳까지 갔다가 왔다.
그런데.... 이미 선두는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급한마음으로 가지 않고 천천히 후미에서 올라가 본다. 역시 정상등산로가 아닌 곳이라서인지 능선길의 경사가 만만치 않다.
이곳이 최초 등산로와 능선길의 만나는 지점이다. 약간 등산로 표시가 잘못되어 있다. 이 이정표대로는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게 되어 있고 정상적인 등산로와 새재샘터 그리고 중이폭포는 외쪽 희미한 길로 가야 한다.
어찌됐든 등산로는 잘 찾아가고 있으니 칼바위능선쯤에 오르니 바위에서 강인하게 자라는 생명을 보면서..
계족산 정상에서 바라본 8-7-6봉들...
계족산 정상 잠시 홀로 쉬어 본다.
6봉이나 5봉쯤에서 바라본 고씨동굴...
앞에는 태화산이 버티고 있고.... 그 아래는 동강이 흐르고 있다.(정확하게 동강인지 남한강이지 모르겠다) 삭도기계 잔해... 이 깊은 산속에 이렇게 큰 기기가 놓여 있다니... 담에 와서 고물로 팔아야 겠다...
정양산성(왕검성) 소개
정양산성은 대야산성:태화산성:온달산성과 더불어 고구려가 미천왕(300-301)때 남하한 후 남한강 연변의 방어기지로 축성한 것으로 보이며 자연석 난층쌓기로 정교하게 축성되었다. 일부 붕괴된 곳도 있으나 삼국시대 산성으로서는 비교적 잘 보존된 산성으로 전체적인 평면모습은 서북쪽을 향해 넓은 사다리꼴 또는 키모양을 하고 있다.
그만큼 남한강 상류를 통해 이동하는 적군을 쉽게 제어할 수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셈이다. 이곳은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는데, 내성의 둘레는 1,060m, 외성의 둘레는 570m로서 성벽의 총 연장은 1,630m에 달한다. 또한 정양리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곳에 차단벽이 5개, 외성에는 2개가 있다.
정양산성 일명왕검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을 찍을려고 밑으로 내려가는데 바닥에는 나무가지와 돌로 조금 힘들게 걸어간다. 하지만 날 놀라게 하는것이 있는데 ....
살모사... 내 앞을 스르르 지나간다.. 꽉 잡아서 껍질 벗겨 먹어 버릴꺼다..
정양산성(왕검성)을 보면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보호되지 않고 방치하고 있냐 싶다. 그리고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쌓았는지 그리고 이 돌은 어디에서 옮겨 왔는지 산성에 쓰여진 이 돌들은 거의가 이 산에 있는 돌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쌓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그 높이와 그 기법..... 과연 삼국시대에 쌓았던 산성이 맞는지 ...
산성위에서 바라본 계족산 정상....
다시한번 바라보아도 산성의 깊고 높음이 참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살모사는 쫓아 버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산성아래에서 하늘를 보며...
저 멀리 계족산 정상과 8봉.7봉.6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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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정상이 보인다.
산성은 생각보다 길었다.
산성길로 내려오면서 바라본 동강의 물줄기...
왕검성지
성지는 운동장만큼이나 크다.
오른쪽에 열심히 사진을 찍고 이제야 오는 안성산꾼님...
왕검성지...
표지석....
왕검성지 해발 400m에 위치한 왕검성지(王儉城址)는 포곡형(包谷型)으로 축조되어 있다. 멀지 않는 태화산성, 완택산성, 임계산
성, 영춘의 온달산성과 비슷한 구조다. 왕검성은 고구려 미천왕 때(300~ 301년) 남하해 남한강의 방어기지로 축성된 것으로 추측
되고 있다. 왕검성이라는 이름은 확실하지 않으며, 오히려 동국여지승람에는 정양산성(正陽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검’이라는 이름은 고구려 때의 벼슬 이름일 뿐이다. 따라서 이 성은 고구려 때 쌓은 것은 확실하며, 그 후 신라 때 개축했을 것으로 보는 사학자들도 있다.
자연석을 난층 쌓기로 정교하게 축성된 이 성은 일부 붕괴된 곳도 있으나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평균 높이 6m, 폭 4m에 전체
둘레 길이가 770여m 가량 된다. 4곳의 성문터가 남아 있고, 기와와 토기 파편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건축물들이 있었던 것
으로 추정된다. 성내에는 성으로서 필수 조건인 우물터도 남아 있다. 2003년 6월 국가지정문화재 제446호로 지정됐다.
성지는 잡초에 쌓여....
성지입구의 이정표...
옛 등산지도에서는 왼쪽으로 등산로가 되어 있지만 길을 좋지가 않은지 오른쪽 산성길로 많이 내려온다.
거리는 조금 멀짐만....
동강을 바라본다.
산꾼님은 여전히 사진에 몰두해 있다..
정도대와 태실비....
요즘 드라마 이산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정조대왕의 태실비이다..
물론 흙만 넣어 두었겠지만...그 의미를 되새겨봐야....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두는 작은 돌방으로, 이것은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태를 모셨던 곳이며,
그 앞에는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는 비가 놓여 있다.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의 맏아들이다. 정조 대에는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받아 당론의 조화를 이루었고,
규장각을 통한 문화사업을 활발히 하였으며, 실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태실은 현재 2기가 남아 있는데, 하나는 받침돌 위에 둥근 몸돌을 올리고 8각형의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며
그 주위에 난간을 둘렀다.
다른 하나는 원통형 돌함(石函) 위에 반원형의 뚜껑돌을 얹은 모습이다.
태실비는 거북받침 위에 한돌로 된 비몸과 머릿돌을 세웠다. 거북받침의 등에는 5각형 무늬를 조각하였고 머릿돌에는
두 마리 용을 양옆에 새기고 그 사이에 구름무늬를 채웠다. 비몸은 앞면에 비의 명칭을, 뒷면에는 만든 날짜를 새겼다.
정조가 태어난 다음해인 영조 29년(1753)에 태실을 만들고, 순조 즉위년(1800)에 비를 세웠다.
1929년 조선 총독부에서 전국에 있는 태실을 창경원으로 옮길 때 이 태실의 태항아리도 꺼내 갔다.
태실과 비는 광산개발로 흩어졌던 것을, 1967년 KBS영월방송국 안으로 옮겼다가 지금의 자리로 다시 세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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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대왕 태실비 정종대왕 태실비(胎室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14호)는 조선 정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비다.
영조 29년(1753년) 영월읍 정양리 태봉에 처음 조성되었다. 태봉은 계족산 서릉 469m봉 남쪽 지능선에 있는데,
정양 마을 서쪽으로 마치 임신한 배처럼 보이는 곳으로 현재 송전탑이 있다.
태실비는 순조 원년(1801년)에 가봉(加封)되어 잘 관리되어 왔다.
가봉된 태실비는 초석은 바닥인 난간 위로 팔각대가 놓이고, 태를 담은 항아리는 팔각대 안에 보관돼 있다.
팔각대 위로는 지대석과 상개석으로 봉인되었다.
그 후 1929년 왜정 때 일본인들이 태실의 관리와 유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태 항아리만 빼내어 창경궁으로 옮겨갔다.
이 때 태를 옮길 때 태는 은 항아리에 담겨져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후 해방이 되면서 태봉(정양 마을 서쪽 구릉지대)에는 석회석광산이 생겨 본래의 태실이 훼손, 매몰되고 말았다.
그 후 1967년 영월 주민들이 훼손되고 매몰된 태실비를 지금의 영월방송국 자리로 옮겨 관리해 오다가 태실비를 제 자리에다
옮기려 하였으나, 본래 자리였던 석회석광산에 송전철탑이 자리를 차지하는 등 산 자체가 파헤쳐져 어쩔 수 없이 1997년
태봉과 가장 가까운 자리인 현 위치로 옮겨놓게 되었다.
하산로인데..
난 마을로 하산해 버렸다.
그래서 정조대왕태실비도 못 보고....
강가에서...
역시나 강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산꾼님...
둘이서 산행후 사진을 찍기위해 강가로 내려갔었다...
오늘 이렇게 하루의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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